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1. A남과 B녀가 오래 사귀면서 서로 결혼을 약속하였는데, B녀에게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A남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한 경우, B녀는 A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2. 약혼을 해제한 때에는 당사자일방은 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이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재산상 손해 외에 정신상 고통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습니다(민법 제809조).

3. 그런데 약혼은 혼인하려는 양당사자의 합의로 성립하고, 위 합의는 명시 또는 묵시의 합의를 의미하며, 약혼식과 같은 의식 또는 예물의 교환 기타 어떠한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4. 따라서 사안의 경우는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가 A남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한 경우이므로, B녀는 A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5. 위 사안의 경우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 즉 약혼의 성립을 전제로 한 것인데, 위와 같은 약혼의 성립은 어떤 경우에 인정할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즉 약혼식을 하고 서로 예물을 교환하는 등 명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약혼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나, 이러한 명시적인 약혼성립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을 경우에는 결국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측에서 약혼성립사실을 입증하여야 할 것입니다.

6. 이와 관련하여 서울가정법원은「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당사자의 일방이 타방에게 약혼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약 2년간에 걸친 교제 및 계속되는 성적 교섭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약혼의 성립에 대한 신뢰를 주었다면, 이러한 신뢰의 보호를 위하여 당사자 사이에 약혼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따라서 당사자의 일방이 그 약혼을 부당하게 파기하였다면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서울가정법원 1995. 7. 13. 선고 94드37503 판결].

7. 한편 A남과 B녀가 오랜 기간 사귀면서 서로 성관계를 가져온 사실은 있지만 약혼성립에 관한 B녀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인정되지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 경우 정조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가능할까?

 

 

1960년대 서울가정법원의 판결 중에는,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다른 여성과 혼인을 약속하였다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사안에서, 이러한 혼인약속은 사회질서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어서 약혼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다만 사기와 정조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만약 위 A남에게 위 서울가정법원의 판결사안에서와 같은 사정이 있다면, 오늘날에도 기망과 이로 인한 정조침해를 불법행위로 구성하여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만약 A남에게 본처가 있다는 등의 어떠한 사기성이 없이 미혼인 상태에서 B녀와 교제하면서 빈번하게 성관계를 가지다가 A남이 일방적으로 B녀에게 결별을 통보하였다면,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우를 A남의 불법행위로 구성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다만 항상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사정에 비추어 A남의 악의성 내지 A남의 행위가 사회상식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인정된다면 불법행위가 인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