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에서 보낸 결혼 10년, 그리고 드디어 꺼낸 이혼 이야기


제가 서울 송파구에 정착한 건 결혼하면서부터였습니다. 남편과는 직장 내 소개로 만나 3년 정도 연애한 후 결혼했고, 둘 다 맞벌이라 바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는 깊었다고 믿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참 평범하고 고마운 결혼생활이었어요. 첫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조금씩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남편은 회사 일에 점점 더 몰두하게 되었고, 퇴근 후에도 술자리를 자주 가졌습니다. 처음엔 육아로 지친 저를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늦어지는 귀가 시간, 차가워지는 말투,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태도는 저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남편의 휴대폰에서 다른 여성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도 있고, 남들 눈도 있고, 무엇보다 이 결혼이 내 청춘의 대부분이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남편은 저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육아도, 생활도 모두 제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경제권도 완전히 남편 손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단 한 푼도 제 마음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아내가 아니라 그냥 가사노동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낸 건 송파구에 있는 한 무료 상담 센터에서였습니다. 상담사분이 조용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혼 전문 변호사와 연계된 상담을 안내해주셨는데, 그게 제 인생을 바꾸는 첫 걸음이었어요. 두려움이 컸지만, 법률사무소를 찾아간 날, 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는 변호사님의 진심 어린 태도에 조금씩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이의 양육권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남편은 본인도 아이를 사랑한다며 친권과 양육권을 주장했지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제가 전담으로 키워왔고, 실제로 남편은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님과 함께 준비한 자료들—아이 병원 내역, 학원 상담 내용, 제가 쓴 육아일지, CCTV 자료까지—모두 양육의 실질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조정은 불성립으로 끝났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하지만 담담하게 저의 상황을 정리하고 입증자료를 내밀 수 있도록 도와준 변호사님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첫 재판에서 무너졌을 겁니다.

재산분할에서도 힘든 싸움이 있었지만, 결국 결혼 기간 중 쌓아온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몫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제가 앞으로 살 수 있는 전세 자금과 기본 생활비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했기에, 하나하나 빠짐없이 체크하며 준비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마침내 모든 게 정리되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이와 함께 지냅니다. 경제적으로는 이전보다 빠듯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정말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억지로 웃을 필요 없고, 아이의 웃음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혼은 끝이 아니라, 나를 회복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송파구나 그 근처에서 고민 중이라면, 꼭 이혼 전문 변호사나 상담 기관을 찾아가 보세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믿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시작된 겁니다.